Glasses 1. 성 제발트의 성골함을 기록한 도판집은 이 성골함의 뼈대에서 자라나거나 새겨져 있는 인물 조각들을 이야기별로 촬영해 나열해 두었는데, 그 중 ‘눈먼 자를 고치심(Heilung des Blinden)’ 이라는 제목이 달린 장이 있다. 대부분의 다른 사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풍경이 두 쪽에 걸쳐 인쇄되어 있지만 풍경의 정중앙에 사람의 머리가 있었던 상황과 제본 공정의 실수 때문에 페이지 사이 홈에서 같은 얼굴이 두 번 반복되어 인쇄되어 있다. 머리는 하나일 때도 선글라스는 눈처럼 두 알이라서 표면에서 같은 풍경을 양옆으로 두 번 보여준다. 누군가가 누군가의 눈동자 속 제 모습을 제 두 눈으로 볼 때 그 사람 얼굴이 가진 두 개의 눈알 중 하나를 선택한 뒤 보는 것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매번 기억이 나지 않는 것처럼, 이 책의 홈에서 이탈해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진 얼굴의 표면이 어디서부터 쪼그라들어 본래의 가장자리가 되어야 하는지는 보고도 가늠하기가 어렵다. 다음으로, 양 페이지에서 서로를 바라보도록 인쇄된 두 사람, 그 순서가 아니라면 마주 보는 두 사람이 양 페이지로 뜯겨 갈라선 책 페이지의 모습이 있다. 두 사람의 이미지가 책으로 펼쳐질 때 서로를 완벽히 마주 보아야 할 두 쌍의 눈동자는 갈매기 모양으로 펼쳐진 책의 곡률에 갇혀, 서로의 얼굴이 버젓이 맺혀있을 상대의 눈동자에 미처 도달하지 못하는 동시에 너머를 뚫는다. 두 명이 마주 보려면 모두 고개를 안쪽으로 돌리고 눈을 맞추어야 하는 데 반해, 한 사람이 카메라를 쳐다본다면, 이 영상 속 하나의 머리는 이제 잠재적으로 무한히 많은 머리들과 동시에 눈을 맞출 수 있게 된다. 숏/리버스숏은 한 배우가 다른 배우가 있는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연출한 뒤, 다른 배우가 첫 번째 배우를 돌아보는 모습을 연출하는 영화 기법이다. 두 배우의 고개가 반대 방향으로, 즉 안쪽으로 꺾여있기 때문에 관객은 이 두 배우가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고 가정한다. 한 번의 화면에 단 한 명만 나오지만 화면마다 두 사람을 감싸고 있는 명암의 닮음, 건축의 반복이 마치 책장의 홈처럼 둘을 봉합하고 있다. 렌즈가 여과한 화면에서 시선의 동시성에 대한 정황은 잇기 위해 자르는 절차에서 성공하는 것이다. 2. 두 개의 독립된 머리와 목을 갖고 어깨 아래부터는 한 몸인 Y형 일란성 샴쌍둥이가 한 화면에 잡힌다. 둘은 말을 하기 시작한 나이 즈음이다. 늘 건강했던 둘은 갑자기 그들 머리 사이에 둘의 머리만 한 혹이 생겨 분리 수술을 하게 된다. 부모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과 동시에, 한 명만 살아남았을 때의 두 가지 그림을 마음속에서 무한히 시뮬레이션해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. 부모는 그들이 껴안은 이 동물적인 리허설과 무관하게, 수술을 집도할 의사의 경험치, 현대 의학의 선례들, 두 자매가 공유하는 내장의 상태가 그 순간 누구에게 더 우호적이었는지 등으로 미루어 수술로 결국 누구를 죽일 것인지 미리 안내받았을 것이다. 둘 중 한 아기가 두 팔을 사용해 어머니의 얼굴을 만지고 있고, 카메라는 그 두 팔의 여전한 주인이지만 그것이 만지는 자신의 어머니를 쳐다보지 않는 머리 쪽으로 아주 미세하게 패닝 한다. 이 순간을 마지막으로 화면은 꽤 오랫동안 암전되고, 다음 화면은 직전에 걸렸던 아이 얼굴을 좀 더 가까이 보여주면서 시작한다. 화면은 다음으로 그 아이 머리와 인접한 팔을 나선형으로 휘감은 흉터를 보여준다. 관객은 이 아이들의 생김새를 바로 변별하지 못하더라도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샴쌍둥이를 왼쪽과 오른쪽이라는 익숙한 번역 감각으로 처참할 정도로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. 그리고 지금 화면에 안 나온 머리가 하나 더 있고 그것을 아직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화면의 크롭과 두 자매의 물리적 잘림을 일치시키는 가학적이고 아주 논리적인 공포가 발생한다. 카메라는, 예상해버린 내용에 대한 가책을 줌 아웃하며 최대한 천천히 보여준다. 화면의 여백이 벌어지는 느린 속도는 관객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고, 아무런 반전 없이 그 얼굴 옆에 다른 얼굴이 이제는 없다는 것, 하나의 몸에 하나의 머리만 달린 살아남은 아이의 온몸을 천천히 보여준다. 이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로 했을 때 제작진이 이 사건의 발생—분리 수술—을 예상했는지에 대한 여부는 나에게 상상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지만, 내가 보고 있는 완성된 영상에서 이 장면은 견디기 힘든 절정의 순간으로 편집되어 도착해 있었다. 어떤 기계의 가장 간단한 조작들(패닝—암전—줌아웃)로, 정작 기계가 가장 기계다운 소임을 다할 때 내 몸과 마음이 맺은 밑바닥의 조건이 거북하게 드러난 듯했다. 눈—공포와 슬픔, 입과 고개—자아와 섭취에 대한 통제권, 어깨 아래의 모든 기관—폭력과 죄책감. 글 김무영